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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교육 연구

[문법 교육] 제2언어 문법 교수의 흐름 (상)

 

[문법교육] 한국어 문법 교수의 방법론과 문법 교수 모형

한국어 문법 교수의 방법론 연역적 방법과 귀납적 방법 일반적으로 학습자에게 문법을 제시하는 방법은 문법 규칙을 먼저 제시하는가, 언어 자료의 시례를 먼저 제시하는가에 따라 연역적 방법

nurimal.tistory.com

 

안녕하세요? 조이입니다.

제가 요즘에 문법 교수법에 관심을 계속 두고 있어서 관련 논문이랑 책을 주욱 읽어 나가고 있어요.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이 뭐냐면, 저야 지금은 이 모든 이론들이 당연히 그렇구나 하고 지나가는 거지만, 예비 한국어 선생님들이나, 한국어교육 대학원 처음 들어오신 분들이 이런 내용을 보면 재미도 없고 이해도 안 될 것 같아서 듣기와 읽기 모두가 가능한 형태로 콘텐츠화하면 어떨까 하는 거였어요. 저도 마침 논문 쓰면서 관련된 이론도 훑고 할겸요. 

 

제2언어 문법 교수 흐름은 한국어교원양성 과정을 들으실 때에도 빠짐 없이 등장하는 이론이고, 또 3급 교원 자격증 시험에서도 거의 빠진 적 없이 출제되고 있는데요. 그만큼 언어교육학에서 기초적이면서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이지 않은가 합니다. 

 

가장 아래에 해당 포스트에 대한 팟캐스트 자료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문법은 언어의 핵심이죠. 문법이 없는 한 언어는 존재할 수가 없으니까요. 문법이라는 게 분명히 존재하지만 문법을 잘 안다고 해서 목표 언어를 잘 아는 것은 아니니, 언어 교육학 중에서도 문법 교육 분야는 정말 말이 많은 분야인 것 같습니다. 과거 언어 교육이 시작한 때부터 현재까지도 문법 규칙을 형식적인 제시를 통해 명시적으로 배우도록할 것인가, 아니면 유의미한 언어 사용 환경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도록해서 암시적으로 문법 규칙을 배우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끊임 없는 논쟁이 계속 되고 있고요. 이 논쟁이 언제 끝이 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역사적으로 문법 교육에 대한 접근 방식은 많은 변화를 겪어 왔는데, 이런 변화들은 문법 교육 분야가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발달하면서 나타난 것으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고 그 경향에 따라서 다양한 특징을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이것들을 발달 순으로 크게 셋으로 나누자면, 문법만 중시하는 교수 개념에서 시작해서, 유의미한 의사소통에 노출이 중요하다는 유형으로 이어졌고, 그 다음에는 문법과 의미를 모두 중시하는 교수 기법들이 출현했습니다. 이제 방금 제시한 셋을 순서대로 나열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먼저, 문법 기반의 접근법입니다.

 

문법 기반 접근법

수 천년 동안 문법은 언어 교육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언어 교육은 문법 교육과 동일시되었고, 문법은 교육과정 개발과 언어 교재 제작을 위한 원리와 내용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의 언어 교육 교재는 주로 문법 규칙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학습자가 목표 언어를 아는 것은 문법 규칙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시기입니다. 

 

보통 언어 교수법을 논할 때 문법 기반의 접근법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들이 바로 '문법 번역식 교수법(Grammar Translation Method)', '청화식 교수법(Audio-Lingual Method)'이 대표적이죠. 이 교수법들은 각각 서로 다른 점이 분명히 있지만, 모두 외국어 학습에 있어서 그 언어의 구조적 측면을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또렷하게 공통점을 가집니다. 

 

문법 번역식 교수법(Grammar Translation Method)

우선 문법 번역식 교수법은 18세기 말에 도입되어서 19세기에 세계 여러 곳으로 퍼졌습니다. 특히 외국어 맥락에서 이 교수법의 다른 버전들이 여전히 여러 곳에서 쓰이고 있지요. 라틴어나 그리스어와 같은 고전어 교수 접근법에 기댄 이 교수법은 오로지 문법 규칙과 문법 구조 학습을 중시합니다.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문법 범주에 근거해서 목표 언어를 명사, 동사, 부사와 같은 여러 품사로 나누고, 규칙에 대한 명시적 설명을 하고, 제2언어로 쓰인 텍스트를 모국어로 번역하는 방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집니다. 문어에 초점을 둔 이 교수법의 또 다른 목적은 목표 언어의 문학 작품을 탐구하고, 제1언어에 대한 이해를 증신시키기 위함인 동시에 학습자의 능력을 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로 진입하면서 구조주의 언어학의 성장과 함께 연구의 주된 관심사는 품사에 관한 문법 연구에서 구조적·음운론적 특성에 대한 기술로 바뀌었습니다. 이때는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구어로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높아졌는데, 이런 변화는 행동주의 심리학의 발달과 함께 나타났죠. 그리고 이 시대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언어 교수법이 바로 원어민의 발음을 듣고 그대로 따라하는 '청화식 교수법(Audio-Lingual Method)'과 목표 언어로만 목표어의 수업이 이루어지는 '직접 교수법(Direct Method)'입니다. 

 

청화식 교수법

청화식 교수법은 앞서 언급한 문법 번역식 교수법과 같은 방식으로 문법 규칙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문법 구조를 배우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실생활에 유용한 의사소통 능력을 개발하는 데 초점을 두었어야 했는데 말이에요. 청화식 교수법은 이론적으로는 습관 형성과 훈련의 과정으로 보는 행동주의 심리학에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기 때문에 청화식 교수법의 핵심은 필수적으로 '구조 패턴 암기'를 하는 것이고, 이런 암기가 언어 습관을 강화한다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저도 외국어를 배울 때 모를 때는 문장을 통채로 외워 버리는 방법을 택하는 데 일정 부분 효과가 있다고 봅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청화식 교수법이 기존의 품사 중심의 문법 연구에서 벗어나 언어의 구조 및 음운론적 요소 기술에 중점을 둔 미국의 기술주의 구조언어학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문장 구조가 간단하고 쉬운 순서부터 복잡한 구조로 열심히 듣고 따라하는 것인데, 의미나 맥락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청화식 교수법의 논리는 예문과 문장 단위의 패턴 반복으로 규칙을 교육할 수 있다는 것인데, 지금도 애용되는 문형 반복 연습(pattern drill)이 청화식 교수법에서 기인했죠.

 

문법 번역식과 청화식 교수법 이후에도 읽기 접근법(Reading Approach), 구두 상황 교수법(Oral and Situational Method), 침묵 교수법(Silent Way), 전신 반응 교수법(Total Physical Response)과 같은 많은 교수법들이 나타났지만, 사실 앞서 언급한 이 교수법들은 언어가 어떻게 학습되는지에 대한 가정을 달리할 뿐 교수요목(syllabus) 측면에서는 모두 문법 기반 교수법의 관점과 궤를 같이 합니다. 다시 말하면, 수업 내용을 조직하는 데 언어 기능이나 실제 의사소통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고 주로 언어 형태 분석에 기반을 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교수법들을 묶어서 다르게 부르기도 하는데요, 언어를 하나하나씩 별개로 배우도록 각기 다른 부분으로 나누었다는 점을 들어서 '결과로서의 문법 교육', 혹은 '종합적 접근법'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 한국어 교육학 논문에서는 '종합적 접근법'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제시-연습-산출 모형(Presentation-Practice-Production, PPP)

앞서 언급한 문법 기반 접근법들은 여전히 제2언어 교실에서 많이 사용됩니다. 현재까지도 유명한 대학기관 한국어 어학당에서도 꽤 많은 부분 채택하고 있는 문법 교수 접근법이기도 한데요, 아직까지는 한국어 교육에서 버리지 못하고 널리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법 기반 접근법과 함께 세트를 이루는 교육 모형이 있는데, 그 유명한 PPP 모형입니다. PPP는 말하기 지겨울 만큼 전세계의 수많은 제2언어 교육 기관에서 채택하고 있는 모형인데, 혹자에 따르면 이미 수많은 제2언어 교사들이 외국어 수업의 기본 구성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유명한 모형이라는 말이죠. 

 

PPP 모형에서 문법 교수는 총 세 단계의 조직화된 순서로 구성됩니다. 바로 제시 단계, 연습 단계, 산출 단계입니다. 제시 단계에서는 텍스트나 대화, 또는 구조를 포함한 스토리를 통해서 새로운 문법 규칙이나 문법 구조가 소개되는데, 이때 학습자들은 텍스트를 듣거나 큰 소리로 따라 읽습니다. 청화식 접근 생각 나시죠. 이 단계의 주요 목표는 학습자들이 새로운 문법 구조에 익숙해지고, 그 문법 구조가 그들의 단기 기억에 유지되도록 도우려는 것입니다. 

 

제시 단계 이후에는 반복, 조작, 새로운 형태들의 재산출을 하는 등의 다양한 유형의 쓰기와 말하기 연습이 주어지는 단계가 이어집니다. 바로 연습 단계인데요, 연습 단계에서는 보통 학습자의 주의를 구체적인 구조에 집중시키는 통제 연습으로 시작한 후에 더 자유로운 활동을 통해서 덜 통제된 연습으로 이어갑니다. 연습 단계의 목표는 한 마디로 단기 기억에서 장기 기억으로 이동시키기입니다. 

 

마지막으로 생산 단계에서는 학습자들이 제시 단계와 연습 단계에서 배웠던 규칙을 조금 더 의사소통적인 활동에서 더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독려합니다. 그리고 생산 단계의 목표는 규칙의 내재화, 자동적 반응, 필요 상황에서의 즉각적인 사용입니다. 마지막 단계의 목표는 유창성의 증가인데, 마지막 단계의 활동이라는 게 이를테면 '-기 때문에'를 배웠다고 가정하고, 생산 단계의 활동에서 '숙제를 못 했어요. 왜요?'와 같은 이유 표현이 나오는 상황을 제시하는데요, 사실상 그 표현을 사용하라는 명시적인 지시가 있습니다. 그래서 말차례에서 무조건 그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 등의 일정 부분 경직되거나 고정된 부분이 있고, 또 이게 팀별 활동이라면 앞 팀에서 했던 활동의 흐름을 보고 일정 부분 말해야 할 시점을 예측할 수 있는 면이 다분하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면도 있습니다. 따라서 마지막 단계가 의사소통 과제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유창성보다는 정확성에 초점이 있다고 보는 것이 맞겠습니다.


문법 기반 접근법의 부적절성

어찌되었든 시간이 지나면서 규칙과 구조로서의 문법을 가르치는 데에 초점을 둔 문법 교수 접근법은 제2언어 학습자들이 만족할 만큼의 효과가 없었습니다. 

 

많은 학사들이 명시적으로 문법을 가르치는 것을 마냥 부정하지는 않지만, 제2언어 교육의 최종 목표가 성공적인 의사소통인 점을 감안한다면 문법 중심적 관점에서 보아 문법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학습자가 곧 그 언어를 잘 하는 것이어야 하죠. 그런데 실상은 여전히 원활할 의사소통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또 아무리 문법 형태 복잡도가 높은 게 복잡도가 낮은 것보다 후에 가르쳐져야 하지만, 사실 학습자의 학습 순서가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니지요. 실제로 학습자가 제2언어를 배울 때에는 말하고 싶은 것부터 배우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말하고 싶은 것이나 사용 빈도가 높은 문법 형태를 기준으로 줄 세워 보면 문법 형태의 복잡도와 관련이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 "연습이 완벽을 만든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PPP 모형의 경우에도 많은 공격을 받고 있는데요, 어떤 학자의 말에 따르면 언어 습득 과정이 연습보다는 많은 심리적 제약에 의해서 지배를 받는 것으로 밝혀졌다고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인 것 같아요. 가령 "나도 영국 사람처럼 말하고 싶어"라든가, "일본어 자막 없이 애니메를 보고 싶어."와 같은 것들도 심리적인 요인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PP 모형의 인기는 여전한데, 많은 교사들이 이 모형으로 교육 훈련이나 연수를 받아서 그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저도 대학원에서 PPP 모형으로 한국어 교실을 구성하는 것을 훈련하긴 해서, 틀린 말이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PPP 모형이 갖는 여러 장점이 있기 때문에 여전이 많이 쓰이겠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제시와 연습을 통한 문법 학습이 유일한 학습 방법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연구자 분들께서 새로운 교수 모형을 개발하기 위해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계실 텐데요, 기존의 PPP나 오늘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PPP와 양대 산맥을 이루는 TTT 모형이 너무나 확고한 위치와 상징성을 띠고 있어서 앞으로 아주 강력한 교수 모형이나 방법론이 나오지 않는 이상은 당분간은 이 모형들의 시대가 계속 될 것 같습니다.

 

항상 짧게 핵심만 전달하고 싶은데 잘 안 되네요.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안녕히 계세요.

 

 


< 참고 >

Hossein Nassaji & Sandra Fotos 지음, 김은호·성지연·김서형 옮김(2018), 제2언어 교실에서의 문법 교육 -의사소통 맥락에서 형태 초점 교수 통합하기-, 한국문화사,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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